올해도 한국YMCA 청소년 통일자전거 국토순례는 계속됩니다.
드디어 2024년 제17회 한국YMCA 청소년 통일자전거 국토순례의 첫 발을 내딛습니다.
6월부터 한여름인가 싶게 덥더니, 7월 장마는 꼭 동남아에 온 것처럼 정신을 홀리고, 장마가 끝나니까 한반도 전체가 한증막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국토를 종단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떠나기 전부터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부모님들에게선 별다른 염려가 전해지지 않습니다.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또 아이들이 안전하게 목표를 달성하고 돌아오게 도와줄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물씬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까 싶네요. 이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건 YMCA 지도자로서 참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명에서 이렇게 많은 인원이 국토순례에 참가하기는 처음입니다. 혁샘이 여러 고민 끝에 교통비를 절약하면서도 아이들이 너무 고생하지 않고 이동하는 방법을 찾아낸 덕분에 편안하게 김해까지 왔습니다. 아침에 자전거를 버스에 싣는 일은 만만치 않았지만 형들이 나서서 도와주어 오래 지체하지 않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른 새벽에 눈꼽도 못 떼고 나오신 삼촌들이 두 손 걷어부치고 자전거를 실어주지 않으셨다면 출발조차 못했겠죠?
버스가 너무 시끄러울까봐 걱정했지만 새벽잠을 설치고 나온 터라 아이들이 금세 골아떨어졌습니다. 잠깐 눈을 붙였다 떠보아도 버스가 조용합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전이니 잠시 개인적인 소회에 빠져봅니다. 첫 참가는 2015년이었으니 올해는 무려 10년째입니다. 코로나와 개인 사정으로 중간에 빠진 걸 계산하면 마지막으로 탄 지 5년 만에 다시 참가하게 되었네요. 진부한 얘기 같지만 몸과 마음이 옛날 같지 않습니다. 몸이 안 따라주는 건 세월을 탓하지만 마음도 달라진 건 뭣 때문일까 생각해볼 일입니다. 나태해진 것이겠죠. 상냥한 교사가 아니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자상한 삼촌 역할은 어려울 것 같지만 섬세한 혁샘이 계시니 저는 꼼꼼한 잔소리로 아이들의 안전한 주행을 도울 생각입니다.
출발에 앞서 괜히 아이들마냥 들떠서 사설이 길어졌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경험했던 국토순례는 늘 200~300명 규모로만 다녔었는데 전체 일행이 참가자 60, 지도자 포함 80여명 남짓입니다. 코로나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쫄아든 볍씨를 보는 것 같아서 속상했습니다. 규모가 감소한 원인이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안타까운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 더 안타까운 이유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호연지기도 쪼그라들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연결됩니다. 내가 뭐라고 우리나라 청소년을 걱정까지 떠맡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봐도 내 아이들이 더불어 살아갈 친구들인데 겨우 코로나에, 겨우 경쟁사회 따위에 짓눌리고 찌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막상 집결지에 모이고 보니 옛날 생각에 목소리와 발걸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각 지역 YMCA 지도자들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지역의 문화와 각자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국토순례에 오는 지도자는 모두 한마음으로 청소년들의 성장을 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줄어서 좀 아쉽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참가자들의 뜨거운 열기에 사그라듭니다. 특히 아이들이 작년에 만난 먼 지역 친구, 선생님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명제를 되새깁니다. 전체가 200~300명이면 일사불란하게 시스템이 움직이게 하는 데에만 온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얼마 되지 않은 인원이 모이니 모두가 친해질 기회가 생기네요. 더 가깝게 서로를 알아가는 이 기회가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의 본래 의미를 더 잘 살릴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새로 만난 청소년들은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게 바로 청소년 아니겠어요? 얼르고 달래며 중재해야 하는 지도자들은 속이 타들어가지만 어쨌든 그마저도 처음 만나는 관계에서 필연적인 서로 맞춰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크는 거지요. 자전거를 탄다고 해서 몸만 크면 안되잖아요?
농구라는 스포츠를 탄생시킨 주역이 미국의 YMCA라는 걸 알고 계셨나요? 미국에서 YMCA 지도자들이 농구를 시작한 건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영화 "YMCA야구단"에서도 나오듯이 한국YMCA는 일제시대 조선의 청년들에게 패배의식과 무력감을 지우고 자신감을 고양하기 위해 야구를 보급했습니다. 몸, 마음, 생각이 고르게 발달하는 것이 온전한 성장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청소년의 영지체의 균형잡힌 발달을 추구하는 YMCA에서 가장 중요한 운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소년 자전거 국토순례가 아닐까요?
약간의 비약을 해보자면 포스트코로나 시대, 통일한국의 주역이 될 청소년들이 바로 자전거 국토순례에서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오랜만에 약 좀 팔았는데, 좀 들어줄 만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YMCA야구단" 감상하시면서 듬직하게 돌아올 아이들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집결지 봉하마을에 도착해서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김해YMCA 정명주 사무총장님이 아이스크림으로 청소년들의 더위를 씻어주셨고, 노무현 기념관 차성수 관장님은 남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도전에 나선 청소년들을 격려하고 응원함. 실패해도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가는 청소년 여러분의 앞날을 응원한다는 말씀으로 국토순례단의 일정에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경상남도 박종훈 교육감께서도 영상편지로 청소년들에게 큰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내일부터는 자전거 타는 아이들 소식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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