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 프로그램 4일째, 자전거 주행 사흘째입니다. 첫날에 호흡이 잘 안 맞아서 힘들다는 이야기를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후로는 점점 호흡이 맞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국토순례 7박 8일을 마칠 때쯤 되면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딱 절반을 마쳤을 뿐인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속도를 줄이라는 구령은 “서행”입니다. 도로에 요철이나 돌부리 등이 있을 때 “바닥 조심”, 자전거 앞뒤 간격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라고 “간격 유지”, 뒤에서 자전거 대열을 추월하는 차량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후방차량”. 대열의 줄을 잘 맞추라고 “대열 정비”, 왼쪽으로 차가 지나가니 차선의 오른쪽에 바짝 붙으라고 “우로 밀착”, 내리막을 내려갈 때는 속도 때문에 더 위험하니 간격을 충분히 두라는 의미로 “안전거리 유지” 등등 안전하게 주행하기 위한 구령이 있습니다. 보통 지도자가 선창하면 참가자가 복창합니다. 대열의 맨 앞에 선 로드 팀장이 노면과 교통 상황, 뒤따르는 참가자들의 상태를 확인하며 필요한 구령을 외칩니다. 자전거 30여대가 길게 늘어서면 대열의 후미까지 한 번에 전달되기는 어려워서 나에게 들리는 구령을 뒷사람에게 이어주는 방식으로 대열 전체에 전달됩니다.
국토순례를 시작할 때는 많은 아이들이 입을 뻥긋도 안 하거나 입술만 달싹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면 따라서 외칠 때까지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구령을 외치고, 크게 따라 하라고 소리도 치죠. 그래야 뒤에 있는 친구도 안전하게 탈 수 있다고 설명도 하고요.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 점차 아이들 목소리가 커집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이들이 스스로 구령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자기들 보기에 줄이 흐트러졌다고 생각되면 “대열 정비”, 바닥에 파인 곳이나 튀어나온 곳이 있으면 “바닥 조심”, 오르막을 오르면서 서로 간격을 벌려야겠다고 생각하면 “간격 유지” 등등 각종 구령을 외칩니다. 자기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싶거나 친구들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고 싶을 때는 스스로 파이팅을 크게 외쳐 대열의 사기를 진작시킵니다. 눈치도 빨라져서 지도자가 어느 타이밍에 어떤 구령을 외치는지도 알아챕니다. 지도자들끼리 무전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구령을 외치려고 하면 딱 그 말을 아이들이 먼저 하는 거죠. 무전이 들리는 건지, 텔레파시가 통하는 건지 아무튼 신통합니다.
지도자들이 내내 악을 써댄 덕분인지, 시간이 해결해준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냐면 아이들과 도로에 나섰을 때 큰소리로 지시하지 않는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첫날에는 고함 소리에 긴장하던 아이들이지만, 이제는 그 소리가 서로의 안전과 소통을 위한 것임을 알아차리고 함께 큰 소리로 화답합니다. 아이들의 다리에 근육이 붙는 만큼 성대 근육도 발달할 것 같습니다. 여자 참가자들은 큰 소리를 내본 적이 별로 없는지 처음에는 우렁차게 붙이는 구령을 쑥스러워하는데, 날이 갈수록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첫날부터 약을 팔더니 자전거 탄 지 며칠이나 됐다고 아이들이 변했다는 소리를 늘어놓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사흘간 매일 10시간씩 300km를 탔으니 자전거 경험치는 상당히 습득한 셈입니다. 게다가 오랜 경험을 가진 지도자들과 동료 참가자들이 함께 주행하니 보고 배운 것도 많을 것이고. 아직 미숙한 아이들에게는 주행 중이나 쉬는 시간에도 계속해서 요령을 알려주고 있으며, 또 그렇게 배운 것들을 모두 바로바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으니 습득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겠지요.
지난 사흘 동안 달려오면서 자전거 타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참가자와 지도자, 그리고 각 지역에서 물심양면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 외에도 크게 감사를 드려야 할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청소년 국토순례단이 지나온 지역의 주민분들입니다. 자전거로 도로를 주행할 때 최대한 차량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대규모 행렬이 지나가는데 방해가 안 되기가 어려운 일이죠. 또 한편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차량 통행을 막아서는 게 불가피할 때도 있습니다. 진출입로에서, 교차로에서, 좁은 1차선 도로에서 국토순례단의 진행 차량이 호루라기를 불며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이 탄 자전거 대열을 주행시키곤 합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도로 한 쪽에 지나가는 자전거 한 대도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신경 쓰이기 마련인데, 60여 대 자전거 행렬을 지나치는 운전자가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할지 충분히 헤아려집니다. 특히나 바쁜 길을 가는 도중에는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운전자는 자전거 행렬을 배려하고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게 멀찍이 돌아서 추월하고, 때로 추월할 형편이 안 될 때는 묵묵히 대열을 따라와 주시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 너무 바쁘고 답답한 마음에 불만을 표현하는 분도 계시지만, 그런 분들은 국토순례 주행 중에 만나는 운전자 가운데 극히 일부입니다. 현장에서도 항상 여러 차례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또 감사하다는 인사도 드리지만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사과와 감사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국토순례단 청소년들이 무사히 주행을 마치기를 기원해주시는 분들도 우리가 지나온 김해, 창원, 의령, 산청, 함양, 거창, 무주, 영동, 옥천, 보은, 청주의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또 깊은 사과를 함께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덥습니다. 위에서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에 머리가 핑핑 돌고,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힙니다. 한 번이라도 선크림 바르는 걸 잊으면 금세 피부가 벌겋게 익어버립니다. 주행을 마치고서 한 청소년이 내뱉은 말에 무릎을 쳤습니다. 아스팔트를 하얀색으로 만들고, 차선을 까만색으로 그리지 왜 반대로 했냐는 겁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전국의 도로가 하얀색이면 상당히 예쁠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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