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눈치가 빨라졌다는 말씀을 드렸던가요? 이젠 길을 가다가 저 오르막을 오르느냐, 그 옆길로 빠지느냐 정도는 쉽게 알아맞힙니다. 오르막을 오르다가 산등성이 모양새를 보고 이젠 거의 다 왔다는 것도 알아차립니다. 국도에는 그늘 하나 없이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산길은 가파르지만 그늘과 바람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자전거로 도로를 달리는 일도 이제는 익숙해졌고, 처음 경험하는 단체주행의 긴장도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지리산과 속리산을 넘어온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한 데다가 다리 근육에 힘도 붙어서 웬만한 오르막은 거뜬하게 오릅니다. 매일 덥고 힘들고 지치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회복력은 놀라우리만치 대단합니다. 지리산 종주를 할 때도 걸으면서는 힘들다고 투덜대가 쉬는 시간에는 뛰어다니면서 놀고, 자전거 국토순례 일정 중에도 낮에는 죽어도 더 못 가겠다고 드러눕던 아이가 저녁을 먹고 나면 펄펄 날아다닙니다. 지도자들의 체력은 날이 갈수록 고갈되는데, 청소년들은 근력이 붙고, 지구력이 생기며, 자전거를 다루는 기술에 능숙해지고, 단체주행의 요령도 터득하는 한편, 인내와 끈기마저 몸에 익혀가고 있습니다.
국토순례 일정이 진행될수록 자전거 주행에 통달하는 한편 청소년들의 관계 또한 점점 깊어갑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눈도 안 맞추던 아이들이 힘든 길을 달리며 함께 구호를 외치고, 물 한 병을 나눠마시며 자연스럽게 말도 나눕니다. 그러다 보면 데면데면하던 언니가 어느새 막역한 친구로 변해서 한시도 떨어지지 못합니다. 광명의 한 참가자는 국토순례 출발 전날, 작년에 함께 참가했던 마산의 친구에게 DM을 받았답니다. 2년을 내리 만나서 이렇게 가까워졌는데, 내년에 또 만나면 얼마나 더 반가울지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들으니 국토순례에서 얻어가는 게 단지 자전거로 완주했다는 뿌듯함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전거로 한반도 남쪽을 종단했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며 자부심을 느끼고,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관계를 확장합니다. 또 한 가지 국토순례의 중요한 소득은 청소년들이 신뢰할 수 있는 좋은 어른과 충분하게 교감하며 소통한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도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겠지만, 처음 만나는 전국 각지의 YMCA 실무자와 자원지도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불러주는 건 청소년들에게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배경, 성향을 지닌 지도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이들의 힘들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줍니다. 게다가 동고동락하며 힘든 여정을 끝까지 함께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눈으로 지켜보니 더욱 신뢰가 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토순례 일정이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청소년들은 기운이 넘치고, 지도자들은 시들어가는 중입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국토순례의 마지막까지 버텨내고 있죠. 우루사와 카페인, 아르기닌, 비타민 등등 몸에 좋다는 건 일단 다 찾아 먹고, 아픈 다리에는 파스를 바르고 테이핑을 붙입니다. 키네시오 테이핑의 창시자에게 직접 사사한 테이핑 권위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정품 테이프를 써서 제대로 배운 사람이 붙여주는 테이핑이 100%의 효과를 낸다고 할 때, 테이프의 질이 조금 떨어지거나 아직 미숙해서 제대로 못 붙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 70% 밖에 효과가 없거나 50%만 효과를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어쩌면 20~30%밖에 안 될 수도 있죠.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0%보다는 나은 거니까 100%가 안 될 걸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해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얘기에 힘입어 어설픈 솜씨로나마 매일 테이핑을 붙여가며 7박 8일 국토순례 일정을 버티고 있습니다.
YMCA도 그렇고 국토순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한국YMCA는 각 지역 YMCA의 연맹 조직입니다.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YMCA는 지역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이고요. 그래서 활동하는 내용을 보면 지역마다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점도 많고, 스펙트럼이 아주 넓습니다. 그중에 어떤 운동을 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고, 회원과 시민의 입장에서도 그중에 어느 것을 경험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국토순례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전체 구간을 끝까지 자전거로 완주하면 제일 좋겠지만, 꼭 그게 아니어도 된다. 각자의 사정으로 일부 구간은 버스를 탔더라도, 심지어 일부 구간만 자전거를 탔더라도 안 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국토순례에서 얻어갈 수 있는 건 단지 자전거로 완주했다는 뿌듯함만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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