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얼굴에 뚜렷한 경계선이 생겼습니다. 콧등 위로는 하얗고, 그 아래로는 새까매졌습니다. 38선이냐고 농을 던지니 태극기라고 받아치는 능청과 여유를 보입니다.
하도 더우니까 비가 내리길 바라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비라도 내려서 열기를 좀 시원하게 식혀주면 좋겠다 싶었죠. 매일 일기예보를 보면서 내일은 오겠구나, 오후엔 오겠구나.. 하며 기대를 해봤는데 가는 곳마다 비가 안 와요. 먹구름이 끼었다가도 금세 맑아지고, 빗방울이 떨어지는가 하면 또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7박 8일 동안 전국을 누비며 자전거를 타니 비를 하나도 안 맞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인데 이상하게 올해는 비가 우리를 피해가고 있었어요. 산이 말이 우리가 비구름을 밀어내는 거 아니냐고 해요. 그러고보니 비구름을 몰고 올라가는 우리 행렬이 꼭 바람 같았어요.
어제부터는 도로표지판에 용인이 등장했습니다. 경기도가 가까워졌다는 거죠. 오늘은 드디어 남한강을 만나고 이포대교를 넘어 양평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양평을 자전거레져특구로만 알고 있었는데 양평에 들어오니 물의 도시라고 하는군요. 그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곧 그칠 것 같이, 구름도 안 낀 파란 하늘에서 분무기처럼 흩뿌렸어요. 그 빗방울은 떨어지면서 햇볕을 받아 달궈졌는지 따뜻했죠. 비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구름이나 잔뜩 낄 것이지 시원하지도 않고 축축하게 젖어서 몸만 무거운 여우비가 웬말인가요. 정말 우리가 구름을 밀어내듯이 또다시 비가 멎었어요. 그럼 그렇지.. 하는 찰나 다시 비가 내리는데, 맞으면 따가울 정도로 빗방울이 컸어요. 물의 도시 양평에 들어서자마자 비가 우리를 반겨주니 여기가 물의 도시라는 걸, 우리가 그런 양평을 지나왔다는 걸 잊을 수가 없겠더군요.
시간이 쌓이니 같이 달리는 여수, 안양 친구들과도 말을 섞기 시작해서 이제는 농담을 주거니받거니 하고, 서로 이름도 불러가며 물을 먼저 마시라고 챙겨주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경험했던 이은이가 낯선 친구와 편하게 얘기를 나누니 다른 아이들도 경계를 풉니다. 이은이 덕도 좀 봤고, 여수 아이들이 넉살 좋게 다가와주니 분위기가 유쾌하고 편안해졌어요. 안양 친구들하고는 지난 여행자학교에서 친해진 덕분에 편하게 관계를 맺었네요.
전국에서 모인 13개 지역 YMCA 청소년들의 분위기는 제각각입니다. 일주일 내내 같이 달리고 있는 우리 팀 친구들만 봐도 그래요. 안양은 광명과 많이 비슷합니다. 조금 수줍고,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며, 서로 잘 챙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여수는 일단 다들 자전거를 '잘' 탑니다.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전체 대열 안에서 호흡을 맞추고 힘든 친구들을 챙겨주지요. 활기차고 의욕이 넘쳐서 힘들 땐 노래를 크게 부르며 자전거를 탑니다.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아이들 각자의 성향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지역의 특성도 강하게 느껴집니다. 각 지역 Y에서 만드는 분위기를 말하는 건데요, 생각해보면 그건 결국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생활하는 지도자의 몫이지요. "지도자"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건 YMCA에 와서 처음 봤어요. 참 낯선 말이었어요. 국토순례에 참가해보니 광명Y보다 더 많이 쓰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참가자로 부르고, 선생님들은 지도자로 부릅니다. 정말 낯설었지만 국토순례를 경험하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국토순례 대열에는 선두팀장과 로드팀, 후미, 생활지도자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선두팀장은 대열 전체 참가자의 상태를 고려해서 속도를 조절하고, 도로의 교통상황을 파악해서 주행을 진행하는 책임을 맡습니다. 로드팀은 팀장과 손발을 맞춰 차량을 통제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며 힘든 아이들을 밀어서 대열 속도를 유지해줍니다. 후미는 대열상황을 보며 팀장에게 알려주고, 힘들어서 뒤떨어진 친구들을 끝까지 챙깁니다. 생활지도자는 아이들과 함께 대열 속에서 주행하며 아이들을 독려하고 간식, 식사, 휴식 등을 돕습니다.
주행 중에는 온갖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차가 까어들거나 신호가 바뀌고, 누군가 갑자기 힘이 빠지거나 자전거가 고장이 나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대열이 끊기면 팀장 로드팀 후미의 역할을 누군가 대신해야합니다. 다시 상황이 정리되고 대열이 정비될 때 까지는 누가 됐든지 자기 뒷사람들을 이끌어야 합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걸 각자가 인지해야 합니다.
이걸 조금 넓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언제 어느 순간이든 지도자 역할을 맡게 된다는 거죠.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곧 자기가 속한 집단에서 지도자가 되는 겁니다. 그건 자기 인생의 리도가 된다는 뜻이겠지요. 아이들이 그렇게" 지도자"로 성장할 때 보고 배우는 것이 아이들 앞에 있는 지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지역마다 다르듯이 지도자 또한 지역마다 많이 다릅니다. 국토순례에서 전국의 지도자를 만나며 그 의미를 다시 새겨보았습니다.
아이들 얘기는 어디로 가버리고 꼰대같은 소리만 늘어놨네요. 자전거 여행이 청소년들에게 참 좋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일단 자전거에 익숙해지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도보여행이나 등산은 아무리 다녀봐도 지들끼리 떠들고 놀기 바쁩니다. 자전거는 청소년들에게 공상과 사색의 시간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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