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을 출발, 합천과 거창을 지나 무주로 넘어왔습니다. 이쪽 동네를 잘 몰랐는데 산이 많아요. 오전에 4구간, 오후에 2구간을 타는데 모든 구간에서 크고 작은 산을 하나씩 넘어야 했습니다. 오늘 숙소는 덕유산 무주쪽에 있는 콘도입니다. 덕유산을 넘어야 한다는 말이죠. 산 꼭대기를 오를 수는 없으니 산허리쯤 뚫린 터널을 지나갑니다.
이름이 굉장히 특이한데요, 빼재터널이랍니다. 오타 아녜요. 옛날에 걸어서 넘어다니던 고개 이름이 빼재이고, 그 아래 골짜기에 빼재마을이 터를 잡았어요. 그 밑에 뚫어놓은 터널인데, 높이와 경사도와 올라가는 거리가 뭐..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 가운데 가장 힘들었어요. 핑~ 돈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안양에서 온 친구가 한 말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나요. 끝도 없이 올라가는 것이 꼭 하늘까지 가는 길 같기도 하고, 이렇게 오르다간 정말 하늘나라로 갈 것만 같다는 뜻을 함께 말했는데, 저는 두 번째 의미에 무한한 공감을 보냈습니다.
산이랑 병찬이가 오늘의 영웅입니다. 그 높은 산을 이은이랑 민영이, 국호는 다른 친구들을 다 추월하면서 올라왔고, 창학, 해민, 동주도 뒤쳐지지 않으면서 열심히 올라왔어요. 사실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어요. 산이랑 병찬이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싶었거든요. 연습 중에 산이는 언덕을 오를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흐느꼈고, 병찬이는 연습을 거의 못해서 훈련이 덜 된 상태였고요. 그런데 올라오는 아이들 사이에 산이 모습이 보여요! 너무 놀라고 대견해서 자꾸 머리를 쓰다듬어줬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산이가 보이면 가서 또 칭찬을 해주게 되었어요. 산이는 수줍게 웃기만 합니다.
더 놀란 건 병찬이가 마지막 그룹에 섞여서 도착했을 때였어요. 산을 오르면서 이건 포기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고, 마침 중간에 무전으로 병찬이 자전거 어쩌고 하길래 버스를 탔나보다 싶었고, 나중에 핀잔이나 줘야지 마음먹었는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로 그 산을 넘은 거예요. 숙소에 도착한 병찬이는 얼이 빠진 표정이었어요. 뭐랄까.. 자기 몸의 극한을 느끼고 완전히 탈진한 그런 상태였어요. 제 옆이 앉아 저녁을 먹는 내내 저도 모르게 손이 병찬이 등에 올라가 쓰다듬고 있더라고요.
병찬이가 묻습니다. 선생님은 뒤쳐지면 안되죠? 그렇지, 항상 맨 앞에 있어야지. 그런데 어떤 선생님들은 걸어왔다요~ 병찬이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올라왔는데 지도자 여럿이 끌고 걸어올라오는 걸 본 모양입니다. 제딴에는 뿌듯한 장면이었을 거예요. 그 말을 듣던 창학이가 선생님도 느리게 가는 방법이 있어. 애들 전체를 서행하라고 하면 되지! 제가 살아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려줬네요. 병찬이가 또 말하길 샘들이 자꾸 다 왔다고 하는데 아무리 가도 끝이 안나온답니다. 뜨거운 햇볕과 아스팔트 열기, 분무기라도 뿌려놓은 듯 습한 공기를 참아내면서 그런 끝도 없는 오르막길을 올라온 자신이 대견하겠지요.
아이들 얼굴이 팬더 같습니다. 고글 쓴 눈 주변만 하얗고 볼과 코 주변은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썬크림을 안 발랐냐고 물었더니 산이는 썬크림을 어디다 뒀는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레 말합니다. 동주랑 해민이는 분명히 발랐는데 왜그런지 모르겠다네요. 그러니까 생협 풀빛고운 썬크림을 써야지.. 샘은 7박 8일 동안 마스크 한 번 안써도 탄듯 안탄듯 하잖아.. 썬크림 없다는 산이한테 손바닥 가득 풀빛고운 썬크림을 부어주고 얼굴이 허옇게 뜰만큼 덕지덕지 발라줬어요. 다른 녀석들은 잘 바르라고 말해주는 수 밖엔 방법이 없네요.
병찬이는 다른 아이들과 반대로 눈 주변만 자꾸 벌개져요. 땀이 나서 자꾸 소매로 닦아내면서 옷깃에 쓸렸다나요. 헬멧에 달린 멋진 고글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지 오늘은 고글도 안 써서 더 탔어요.
저녁프로그램은 통일 골든벨이었고, 야식은 진라면입니다. 한밤중에 그걸 먹고 편히 잠들까 싶어 굳이 라면을 먹어야겠냐고 아이들을 떠봤는데 아주 단호합니다. 1인당 1봉지를 주는데, 모른 척 하고 4봉지만 갖다줬어요. 해민이 말이 내가 어쩔 땐 라면을 아주 맛있게 끓이는데, 또 어쩔 땐 맛이 없어. 그러니까 삼촌이 끓이세요~ 합니다. 라면 끓이기 싫으면 먹지마! 하고 쏘아줬더니 서로 나서서 자기가 끓이겠다고 하네요. 라면을 다 먹어가길래 누가 치울래? 하면 또 자기가 치운다며 손을 들고 나섭니다. 이런 자발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학교에서도 보고 싶어요.
오늘의 소감은 미처 못 들었는데 다들 깊이 잠들었습니다. 저녁 먹으면서 우리끼리는 신나게 떠들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그저 오늘 하루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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