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0일
남은 이틀의 여정은 여유롭습니다. 각각 4~50km씩 타면 되니까 이틀을 합쳐도 하루 주행거리 밖에 안됩니다. 여유있게 늦잠도 자고, 점심 때는 정선 5일장에 들러 구경을 하고 왔습니다. 장이 서는 날이 아니어도 제법 사람이 많아요. 여기서 모둠별로 점심과 간식을 해결했습니다.
장터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뭘 먹을지 천천히 골라보고 싶은데 애들은 돌아다니기 싫다면서 짜장면과 제육볶음을 먹겠다고 발걸음을 멈춰버렸습니다. 이틀에 세 끼는 먹었던 제육볶음이라니.. 호야네를 놔두고 중국집이라니.. 어렵게 정선에 왔는데 평소에 먹어보기 힘든 걸 맛보고 가야지 하는 건 나이먹은 어른들 생각인가봐요. 모험과 도전이야말로 청춘의 상징이건만 닭강정에 눈이 돌아가고, 편의점은 어딨냐며 먹거리에서만큼은 익숙하고 안전한 선택을 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콧등치기며 올챙이국수 등 낯선 음식 이름을 보고 호기심이 생기는지 정선 토속음식점으로 순순히 따라들어왔습니다. 영준이는 콧등치기, 이은이는 막국수, 한결이는 묵사발, 표상이는 곤드레밥, 상훈이는 한우소머리국밥을 시켜먹었습니다.
국토순례를 시작하면서 제일 큰 걱정이 불볕더위였어요. 처음 이틀은 더위에 지쳐서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 다음 4일은 구름의 보호 아래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오늘은 구간이 짧았지만 해가 쨍하니 내리쬐고, 기온도 높아서 생각보다 지치네요. 물론 체력이 바닥난 탓도 있고요. 말고개와 돌산령, 미시령, 127km, 삽당령을 지날 때 이 날씨가 아닌 게 새삼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2그룹 친구들은 오늘 127km를 달리고 삽당령을 넘을 텐데, 많이 힘들어서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어요.
도중에 바람이 불었는데, 달갑지 않은 바람이었어요. 뜨거워서 열을 식혀주지 못한데다가 역풍이어서 평지를 언덕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제 계곡을 따라 올라갈 때는 뒤에서 살랑 바람이 불어서 몸을 순간 서늘하게 식혀주고, 등을 살짝 밀어주기까지 했어요. 오르막에 뒷바람이 밀어주니까 꼭 날개를 단 것처럼 몸이 붕 뜨는 느낌이었어요. 바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사람 마음도 때에 따라 참 다르다는 걸 터널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알았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터널을 만나면 보통 창문을 닫잖아요? 공기가 나쁘다면서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햇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다보면 터널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어요. 몸 속 깊은 곳까지 식히려고 일부러 숨을 크게 들이마시다가 깜짝 놀랐어요. 원효대사 해골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하고요.
미시령쪽에서 올라갈 때 봤던 강원도의 기가 막힌 물은 커다란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계곡이었어요. 그런데 삽당령으로 넘어와 여기 정선에서 만난 물은 또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어요. 미시령이 800m, 삽당령이 700m쯤 되고, 그 아래 어디만큼 우리가 올라와 있는 곳은 대부분 해발고도 5~600m입니다. 여기서는 올라가도 700m, 내려가도 400m예요. 저 아래서 볼 때 뾰족뾰족 솟은 산세가 어마어마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그런 산봉우리들을 바로 머리 위에 두고 다니거든요. 이렇게 높고 깊은 산 속에 있는데, 물은 꼭 평야를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하게 흐릅니다. 깎아지른 절벽 밑을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이 너무 신비로웠어요. 그러면서도 그 맑은 물살이라니.. 감탄조차 하기 어려워 한숨만 깊이 내쉬며 바라봤지요. 뒤에 따라오는 아이들도 산과 물에 감동을 하며 멋진 풍경이 나올 때마다 탄성을 내질렀습니다.
참, 어제 달렸던 127km 중 하조대부터 경포대까지는 재작년에 이은이와 함께 도보여행을 했던 곳이에요. 그 땐 대관령을 넘어와서 거꾸로 강릉에서 양양까지 걸었더랬죠. 걸어왔던 길목도, 쉬어갔던 공원도, 묵었던 민박집도 모두 지나치면서 이은이와 함께 기억을 떠올려봤습니다.
드디어 내일 대장정을 마칩니다. 마지막까지 모두 무사히, 안전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마칠 수 있게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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