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제14회 한국YMCA 청소년자전거 국토순례

제14회 한국YMCA 청소년통일자전거 국토순례 후기 5일차

bicycle_YMCA 2024. 7. 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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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미시령. 우리나라 고개 가운데 손꼽히는 곳이지요. 국토순례 시작부터 아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미시령을 오늘 통과했습니다. 어제 이름이 없는 고개들을 오르는데도 그리 힘들었으니 오늘 넘어야 할 미시령은 얼마나 높고, 길고, 가파를지 모를 일이었어요. 양구에서 미시령을 넘기 위해 인제로 내려오는 내내 아이들이 돌아가며 물었습니다. "샘, 미시령 높아요?", "샘, 미시령에서 한 번 쉬어요?", "샘, 저 이번에 버스 타면 안돼요?" 긴장을 풀어주려고 처음엔 달래주기도 하고, 다독여서 용기를 북돋워주다가 물은 걸 묻고 또 묻는 아이들에게는 장난으로 엄포를 놓기도 했네요.

 

결국 미시령에 오르긴 올랐어요. 구름이 다시 돌아와준 덕분에 비교적 시원하게 달렸습니다. 미시령에 가까워질수록 산세가 험해졌고, 그래서인지 절경이 펼쳐졌어요. 앞으로의 경치가 더욱 기대되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면서는 헉헉대는 아이들과 길 밖에 기억이 안 나요. 미시령에선 속초 시내가 내려다보였어요.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과 함께 보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미시령에 올라왔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보니 더욱 감격스러웠지요.

 

언덕을 오르는 아이들 모습이 며칠째 똑같아서 재밌습니다. 한결이는 1팀 본 대열 10명에 남아서 광명의 자존심을 지켰고, 이은이는 조금 뒤에 합류했네요. 이제 표상이가, 그 다음에 영준이 상훈이가 올라올 차례입니다.

 

얘들은 언제오나 기다렸지만 하도 안 와서 어쩔 수 없이 자전거를 잡았습니다. 고갯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긴 싫었지만 애들이 마냥 길가에 앉아있을 것 같아서 속으로 울며 아래로 향했습니다. 내려가면서 줄줄이 자전거를 끌고 있는 아이들을 많이 지나쳤어요. 줄지어가는 개미떼를 떠올려보시면 비슷하겠네요.

 

아무튼 내려가도 내려가도 개미떼만 보이고 우리 아이들이 안 보였어요. 다시 올라갈 일이 걱정될 만큼 내려왔을 때 영준, 상훈, 표상이가 나란히 자전거를 끌고 오네요. 버스에 오른 친구들을 빼고는 완전, 완전히 마지막이더군요. 일단 버스에 안 탔다는 게 반가웠고, 그 다음으로는 주저앉아 쉬는 게 아니라 끌고서라도 올라오고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얘들아, 가자! 따라와!!" 그러니까 또 따라와주는 이 녀석들이 이쁘네요. 셋 다 꾸역꾸역 정상까지 페달을 밟았습니다.

 

미시령을 오르는 길은 인제에서 7km,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는 고성에서는 3km에 이릅니다. 그러면 내리막도 3km 정도 가파르게 내려갈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급경사 내리막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리막길엔 자동차 브레이크 파열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는 빨간 경고문이 크게, 두 군데나 붙어있었고요. 잠시 우리나라 단면도(?)를 떠올려봤어요. 사회시간에 많이 보던 동고서저 지형 말이에요. 한반도의 동쪽에 태백산맥이 높이 솟아있고, 산맥의 서쪽 경사면은 조금 완만한데 비해 동쪽 경사면은 가파르죠. 그랬더니 이해가 됐어요. 이유를 알았어도 손은 계속 아프더라고요. 저녁에 다른 지역 친구 한 명은 팔뚝에 파스를 붙이고 있었어요. 브레이크를 잡느라 아팠다면서요. 무사히 다 내려와서는 순두부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미시령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면서 오늘 하루를 꽉 채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에는 긴장과 설레임을, 미시령이 가까워오면서 점차 불안, 두려움, 기대, 흥분이 뒤섞인 마음이 커졌겠지요. 미시령을 오르면서는 마음보다 먼저 몸으로 반응이 왔을 겁니다. 거칠고 가쁜 호흡, 더 이상 빨라질 수 없어 크게 고동치는 심장박동, 땀범벅이 된 얼굴, 묵직해진 허벅지, 떨리는 팔, 굳어버린 어깨와 목, 아파서 뚝뚝 소리가 나는 손목과 발목까지 자기 몸의 반응과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었을 거예요. 멈춰서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미시령에 올라서서 맛보는 쾌감은 날아오를 듯 했을 테고, 올라오면서 힘들었던 건 싹 잊어버리고 "샘, 미시령이 생각보다 쉽던데요?"라며 뻐길 수 있는 특권도 잠시 누렸습니다.

 

참, 동화샘 소개가 늦었습니다. 작년 국토순례에선 도훈샘이 아이들을 든든하게 챙겨주었는데, 올해는 동화샘이 그 자리를 채워주셨어요. 세심하게 살피고, 부드러운 말투로(저와는 다르게..^^;) 아이들과 소통해주셔서 참 좋습니다. 아이들 생활지도를 도와주기 위해서 함께 왔는데, 팀 사정상, 그리고 생각보다 체력도 좋고 자전거를 잘 타시는 바람에 로드가이드 역할까지 덤으로 맡았습니다. 낮에는 대열의 앞뒤를 오가면서 자전거 대열의 안전을 지켜주고, 아침저녁에는 광명친구들의 생활을 보살피고 계세요. 어젠 무더위로 길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오늘은 아이들 사이에서 추돌사고도 당했대요. 금세 회복하고 저녁에 복면가왕에 출전해서 친구들에게 큰 즐거움도 선사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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