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국토순례 일정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휴가철 피크, 극성수기라고도 하며 숙박요금이 몇십만원에 달하는, 그러고도 방 잡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 주말에 자전거로 동해안을 따라 달려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도상으로 127km, 실제 주행을 하고 나면 13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속초에서 양양을 지나 강릉을 거쳐 가는 동안 이만큼 많은 인원이 묵을 곳이 없기 때문이지요.
목적지는 정선으로, 다시 태백산맥을 넘어야 하죠. 넘어가는 길은 삽당령 고개입니다. 바로 어제 미시령을 넘었는데, 오늘 또 다시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니 아이들이 한숨부터 쉽니다. 그런데 미시령을 넘을 때 만큼 긴장하는 기색은 아닙니다. 막상 해보니까 넘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었을까요? 미시령도 넘었는데 이까짓 듣도보도 못한 고개쯤이야 하는 마음이었을까요?
어쨌거나 전체 구간 중 최장거리를 달려야 하니 출발시간을 1시간 앞당겼습니다. 5시 30분에 일어나서 6시에 아침식사, 준비운동 후 7시 출발. 5시 30분 알람 소리에 몸을 일으키는데 저절로 어이쿠 소리가 나옵니다. 몸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어요. 그리고 꼼짝도 않는 아이들. 알람이 울려도, 불을 켜도 깊이 잠에 빠져있네요.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서 출발시간을 앞당겼으니 늑장을 부리면 곤란해요. 제주 볍씨 아이들을 생각하며 찌뿌둥한 몸을 겨우 일으켰어요. 무슨 말이냐고요? 제주 가서 일주일을 지내며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아이들이 무슨 일을 하건 미적대며 굼뜨지 않더라는 거죠. 새벽까지 얘기한 다음 108배를 하고 겨우 잠을 청했는데, 몇 시간 뒤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어느새 아침달리기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감탄을 했었어요. 그 다음부턴 뭔가 미루고 싶어질 때마다 제주 볍씨 아이들을 떠올린답니다. 잠시 딴 얘기였어요.^^;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보고 긴장을 했어요. 비를 맞아 흘러내려 눈에 들어갈까봐 썬크림도 안 발랐고요. 아침 출발 시간에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무전기가 젖지 않게 비닐로 감쌌고, 우비는 휴식지에서 아이들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나눠주기로 했어요.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지만 마음음 찜찜했어요. 비가 오면 너무 힘이 들거든요. 신경도 많이 쓰이고요. 다행히 얼마 달리지도 않아서 구름이 옅어지면서 햇살이 비치네요. 일기예보가 틀린 것이 기분 좋은 경험을 했어요.
미시령을 넘고 나니 아이들 다리에 짱짱하게 힘이 붙었습니다. 대부분이 평지였고, 적당한 구름과 바람이 도와주어서 자전거 주행에는 최적의 날씨이기도 했지만, 속초-양양-강릉까지 순식간에 달려온 건 정말로 아이들이 잘 달렸기 때문이에요. 며칠 사이에 이렇게 실력이 늘다니, 아이들의 학습능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나름 일주일에 걸친 합숙훈련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해요. 개인의 실력도 늘었고, 팀 주행 호흡도 척척 맞습니다. 아, 그리고 아이들의 회복력은 놀라울 정도이지요. 지도자들은 점점 지쳐가는데, 아이들은 밥 맛있게 먹고, 한숨 푹 자고 나면 체력이 모두 돌아오는 것 같아요. 게다가 자전거를 능숙하게 다루기까지 하니 이제 앞에서 끌고가기가 벅차게 느껴졌어요.
삽당령은 미시령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르는 아이들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끝까지 대열에 붙어서 따라왔고, 올라오는 내내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힘들면 서로를 응원하며, 노래를 부르면서 힘을 북돋웠어요. 동화샘이 노래를 선창하면 아이들이 떼창으로 화답하는 소리가 계곡에 쩌렁쩌렁 울려서 대열 전체에 힘이 실렸습니다. 보통 휴식지에는 보급팀 샘들이 먼저 가서 아이들 간식을 준비해놓고 기다리시는데, 삽당령 정상에 가까워져 보급팀 샘들이 보이자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포카리! 포카리!" 포카리를 달라는 간절한 외침인가도 싶었지만 그것보다는 열심히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포카리를 먹을 자격이 있으니 빨리 내놓으라는 당당한 요구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남은 주행거리가 상당히 긴 까닭에 모든 아이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는 못했어요.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오는 친구들은 버스에 태워서 올라왔습니다. 표상이와 영준, 상훈이가 그렇게 두번째로 버스를 탔어요. 첫번째는 자의로 탔지만 그 이후로 힘들어도 열심히 타던 모습을 생각하면 오늘 삽당령도 충분히 자기 힘으로 오를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 모두 크고작은 부상, 상처, 통증을 안고 있어요. 한결이는 찢어진 바지 구멍 만큼만 허벅지가 탔어요. 꿰매어 입지는 않겠답니다. 영준이와 한결이는 벌레에 물려서 팅팅 부었어요. 냉찜질을 하고 알러지 약을 먹어서 조금씩 가라앉고 있습니다. 상훈이는 허벅지가 많이 아프다고 해요. 파스를 가끔 뿌리면서 일단은 기어를 조금 더 가볍게 놓고 밟으라고 했어요. 표상이는 엉덩이에 땀띠가 나고 쓸려서 약을 뿌려줬어요. 이은이는.. 특별한 부상이 없네요. 벌레도 같이 물렸는데 안 부었고,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다는데 벌써 500km 이상 자전거를 탔으니 안 아픈 게 더 이상한 거죠. 하루가 폭풍같이 몰아친 느낌입니다. 내일은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늦잠을 잡니다. 8시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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