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정말 힘들었어요. 하룻밤 자는 걸로는 피곤이 안 풀려요. 코에서 피냄새가 찔끔 나는 걸 느끼며 겨우 잠을 깼는데, 옆에서 일어나던 도훈샘이 엇! 하며 소리를 지르고, 코에선 핏방울 하나가 뚝 떨어집니다. 서로 마주보며 잠깐 멈칫하고 웃었죠. 저는 사실 첫 날 달리고 나서 코피를 흘렸다며 얼른 안심시켜줬어요.
어제 115km를 타고 나니 오늘의 65km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열심히 달리면 오전에 주행을 마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합니다. 좀 여유있게 다닐 수 있었어요. 점심을 먹고나서 1시간이나 쉬었고, 그 사이에 잠깐 눈을 붙였는데 정말 꿀맛 같았습니다.
오늘 숙소는 장흥인데, 마침 정남진 물축제가 열리는 기간이어서 축제장에 들러서 물놀이도 했습니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아 아주 북적북적한 가운데 물에 들어가서 한참을 놀고 나왔어요.
그러고보니 토요일이네요. 매일 달리기만 할 뿐이라 날짜는 가는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전혀 모르고 지냅니다. 준우가 밥 먹다가 주말이네..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집에 있었더라면.. 하면서요. 어차피 방학인데 주말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힘들고 지친 마음을 그 핑계로 덜어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어제 긴 거리를 달리며 아이들은 힘들기도 했지만, 자전거 주행에 많이 익숙해졌습니다. '대열정비!', '우로 밀착!', '서행!', '출발준비!' 등등의 구령에 호흡을 맞춰서 착착 움직이고요, 언덕은 물론 힘들긴 하지만 뒤떨어지는 아이들도 줄어들어요. 웬만한 언덕은 가볍게 치고 올라갑니다. 능숙해지는 아이들 모습을 보면 국토순례단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립니다.
하루 종일 자전거 위에서 구령으로 소통하다보니 구령이 입에 붙었습니다. 숙소에 들어오거나 휴식지에서 잠깐 쉬는 동안에 아이들끼리 구령으로 대화를 합니다. 보통은 잠깐만 비켜줘라고 했을 상황에 우로 밀착~ 이러고, 여럿이 함께 움직이다가 길 안내를 할 때는 좌회전~ 이러고 있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또 착착 움직여요. 그러고선 자기들끼리도 뭔가 이상한지 막 웃습니다.
엊그제 부모님들이 남겨주신 메시지도 읽어줬고, 오늘 아침에 남기신 메시지도 점심시간에 아이들에게 들려줬어요. 부모님의 메시지를 들은 아이들의 반응이 재밌네요. 영준이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리고 못 들은 척 합니다. 준우는 담담히 듣고 있다가 하이큐를 주문했다는 소리에 작은 탄성을, 표민이는 자꾸 우리 엄마가요? 우리 엄마가요? 라며 묻습니다. 이것도 쑥스럽다는 표현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다른 아이들 반응도 궁금하시죠? 근데 별 특징이 없어요.^^; 그냥 멀뚱하게 바라보다 다시 자기 하던 일을 합니다. 집에서도 익숙한 풍경이시죠? 서운해마시길..
한여름, 그 중에도 한낮에 자전거를 타면 더위가 제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가끔 비가 오는 걸 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도자 중에도 있고, 아이들 중에도 있어요. 시원하다면서요. 저는 비 맞는 것 보단 조금 더운 게 나은데, 일주일이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니 비를 아예 안 만나긴 힘들어요.
오늘 드디어 비를 만났습니다. 점심을 먹고 장흥으로 향하던 중이었어요. 하루 종일 흐려서 달리기 참 좋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지요. 빗방울이 흩날리다가 점점 굵어져서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가 아플 정도가 됐어요.
아이들이 갑자기 페달에 힘을 주면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브레이크를 급하게 잡다가 또 미끄러질까 조심조심, 비에 젖은 브레이크가 안 들을까봐 조심조심, 그래서 앞 친구를 받을까봐 조심조심. 빗방울이 고글에 맺히고, 눈에 들어가서 앞이 안 보이니까 또 조심조심. 저 앞에서 오르막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친구가 보이니까 우리는 더 조심조심.
글로 적다보니 정말 긴장을 많이 하면서 왔다는 걸 새삼 느끼네요. 저는 빗물이 썬크림을 씻어내리면서 눈에 들어가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아마 더 많이 왔으면 계속 못 달리고 잠시 쉬어야 했을지도 몰라요.
숙소에 들어와서 속도계를 보니 70km를 달렸네요. 65km와 별 차이는 없는데 이런 식으로 매일 4~5km씩 늘어나면 전체 거리가 650km는 되겠는데요??
야식으로 피자가 풍성하게 나왔습니다. 다이어트가 목표라던 도훈샘은 목표를 수정할 수 밖에 없고요, 아이들은 근육과 뱃살을 함께 늘려서 집에 돌아갈 것 같습니다. 약간의 근육통과 관절염도 동반합니다.
저녁엔 순애샘을 만났어요. 장흥에서 쉴 때 생각이 나서 문자를 했더니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인 볼 수 있냐고 숙소에 찾아오셨어요. 무려 자가용을 운전해서 오셨답니다. 아이들에겐 기운내라고 홍삼을 선물해주셨어요. 애들 잘 시간이라 오래는 못 봤지만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반갑던지.. 준우는 피자를 먹으면서 순애샘 만나는 게 어색했답니다.^^
내일은 아침 먹고 재를 하나 오른답니다. 그리고 숙소가 산 중턱에 있다네요. 시작과 끝을 오르막에서 불사르게 될 것 같습니다. 힘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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