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을 자전거로 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똑같이 자전거를 타지만, 길에서 본 풍경은 주말과 월요일이 다르네요. 다들 쉬거나 놀러가는 길과 출근하는 길의 분위기는 뭐라 콕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달라요.
아침 먹기 전에 숙소를 떠나 자전거를 내달렸습니다. 광양에 도착해서 아침을 먹고 그 때부터 섬진강 줄기를 따라 올라갑니다. 광양시내를 마저 통과해서 섬진강을 만났을 땐 아! 하고 저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그 풍경을 제대로 묘사하려면 머리 좀 싸매야 하는데, 피로를 핑계로 그냥 넘어가보렵니다.
하루 종일 섬진강을 따라 달렸어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강물도 아름답고, 강을 따라 나있는 길도 정말 예뻤네요. 브레이크를 놓은 채 바람을 가르고 싶은 충동이 자꾸 들더군요.
달리면서 알게 된 놀라운 소식 하나. 국토순례에는 각 지역Y실무자와 자원지도자가 함께 모여 일합니다. 거기에 자전거순례의 특성 때문에 특별한 도움이 더 필요합니다. 자전거를 함께 타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로드가이드 형들이에요. 동아대 싸이클 동아리에서 매년 자전거 국토순례를 도와줍니다. 대열 앞뒤로 오가며 차량 통행을 막거나 힘든 아이들을 밀어주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숙소에서 온갖 힘든 일을 챙겨줘요. 참 고맙고, 중요한 분들이에요.
놀라운 소식은 지금부터, 이 동아리 연례행사로 여름방학이면 14박 15일 국토종주를 한다는 거죠. 올 여름엔 매일 100~200km씩 총 1700여km를 탔대요. 그리고 일주일을 쉰 다음 국토순례를 도우러 왔답니다. 저는 얘기를 듣는 내내 입을 다물지 못했어요. YMCA 국토순례 로드가이드로 참가하려면 꼭 동아리 국토종주를 먼저 완주하는 것이 조건이라고 하네요. 그래야 아이들을 도와줄 만큼의 체력과 자전거주행 실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오늘도 큰 언덕을 하나 넘었어요. 이름은 매치재라는데 5% 경사도의 오르막이 3km에 이릅니다. 경사가 많이 가파르지 않아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달리면 어렵지 않게 넘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상당히 높고 큰 고개라 일단 긴장, 그리고 호들갑과 파이팅!! 실제로 우리 아이들 모두 대열을 맞춰 잘 올라왔습니다. 물론 힘은 들었지만요.
열심히 페달을 저어 재를 오르던 중에 문득, 고개를 '재'라고 부르는 이유가, 허벅지를 모두 불태우고 하얗게 재만 남긴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습니다.ㅎㅎㅎ
어젯밤에 한결이가 문득 그러더군요. "선생님, 버스를 한 번 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버스를 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요." 궁금하면 타보라고 답해줬어요.
"1팀 김한결! 눈에 뭐가 들어가서 갓길에 서 있습니다. 의료팀 확인해주세요~" 뒤에서 들려오는 무전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크게 다친 게 아닌 것 같아 다음 소식을 기다려봅니다. 의료팀에서 한결이를 확인하고 버스에 태웠답니다. 자전거는 정비트럭에 올렸고요. 말이 씨가 된다고, 정말 버스를 타버렸네요. 광명 참가자 중 1호입니다. 많이 아픈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걱정된 마음으로 다음 휴식지에 도착해서 한결이를 찾았습니다.
한결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 친구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주고 있더군요. 저를 보자마자 입을 쭉 내밀고선 억울한 듯 하는 말이, 자기는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안 보이면 위험할까봐 잠깐 멈춰선 것 뿐인데 선생님들이 오자마자 타! 타! 이러면서 자전거도 싣고, 자기도 버스로 끌어가더랍니다. 어쩔 수 없이 탔다고요.
장난으로 버스 얘기를 꺼냈지만 나름 두 번째로 완주할 자신도 있고 자전거를 열심히 탄다는 자부심이 있었을텐데, 많이 아쉬웠을 것 같았어요. 조금 뒤에 버스 담당 선생님이 오셔서 한결이가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 같다며 제게 오셨더라고요. 정말 타기 싫었는데 버스를 타서 쪽팔린다고 말했대요. 그러니 많이 다독여달라고.. 한결이한텐 힘들어서 탄 것도 아니고, 못 따라가서 그런 것도 아니니 괜찮다고 말해줬지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오후에 다시 들려오는 무전. "1팀, 김한결. 체인이 끊어졌습니다." 헐~ 오늘 뭔 날인가? 한결이한테 뭐라도 낀 건지 자꾸 일이 생기네.. 이번에는 정비트럭에 있는 다른 자전거로 얼른 바꿔타고 다른 팀에 섞여서 뒤따라온답니다.
휴식지에 도착해보니 한결이는 있는데, 표민이가 나중에 따라들어 오네요. 일단 한결이한테 뭔 일이었냐고 물으니 자기가 아니었답니다. 엥?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표민이랑 자전거를 바꿔서 탔었대요. 지도자들이 주행 중에 아이들 상황을 전달할 때는 자전거에 달아놓은 이름표를 보고 얘기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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