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출발해서 식사를 하기 전에 한 구간을 달렸어요. 해변에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해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것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어요. 고깃배 한 척 떠 있고, 섬도 둥실 떠 있는 안개 낀 바닷가.. 상상하시는 그 그림이 맞습니다. 모래밭 뒤로는 송림이 우거져서 밥을 먹고 쉬기에도 좋았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선 바로 보성으로 넘어갔어요. 보성이 뭘로 유명한지 아세요? 차밭이죠. 장흥에서 보성을 넘어 순천까지 가는 오늘 일정에 차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차밭을 직접 가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이나 영상으로라도 보면 산자락에 층층이 늘어서 있는 차밭이 참 멋있죠. 눈치채셨나요? 그곳을 지나간다는 건 그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차밭 사이 고갯길을 넘어야 합니다. 고개 이름은 봇재라네요. 고도가 해발 200m쯤 된다는 소식에 모두 긴장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까, 경사가 급할까, 오르막길은 얼마나 길까,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뒤떨어져나갈까..
고갯길은 빠르게 치고 올라가야 제맛이지만(힘도 덜 들고), 그러면 속도가 모두 제각각이라 대열을 유지하며 주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대열에서 가장 느린 사람 속도에 맞춰서 올라갔지요.
아이들은 느리게 가는 걸 힘들어합니다. 지난 번에 기어 변속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 기어 변속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싫어하는 친구들도 꽤 자주 봅니다. 무거운 기어를 걸고 허벅지가 팽팽하게 땡길 만큼 힘을 줘서 페달을 밟는 느낌을 좋아합니다. 저도 그게 뭔지 알아요.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장거리를 탈 때 그렇게 하면 오래 못가요. 근육이 얼른 회복되지 못할 만큼 손상을 입거든요.
기어를 못 쓰거나, 안 쓰거나, 기어를 써도 체력 또는 정신력이 약한 아이들은 오르막을 오르다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차에 태우기도 하고, 언덕 정상까지 끌고 오기도 합니다.
언덕을 오르면서 앞 팀 아이들이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우리 애들은 잘 오고 있을까? 뒤를 돌아보니 준우가 사라지고 없네요. 준우 옆에서 타는 지윤이도 안 보이고요. 그 자리를 남자친구들이 메웠습니다. 정상에 도착해서 보니 준우도 조금 뒤로 밀려났을 뿐 우리 팀 후미에서 끝까지 올라왔답니다. 광명친구들 모두 발 한 번 내리지 않고 봇재 등정 성공!
도착해서 쉬다가 아이들이 묻는 말이 재밌습니다. 하나같이 여기가 끝이에요? 하고 묻는데, 그 질문에 별 거 아니네~ 라는 약간의 뻐김과 오르막이 더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섞여서 들립니다. 아무튼 긴장했던 것에 비하면 쉽게 올라왔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젯밤에 이동경로를 확인하면서 지도를 쓱 보는데 익숙한 지명이 많았어요. 벌교, 보성, 조성, 율어, 봉림 등등 모두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는 곳들이에요. 어릴 때 내내 옆에 끼고 지내던 책이라 너무 반갑고 고향만큼 정이 가는 지명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이렇게라도 들러보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오랜만에 책을 꺼내들 것 같아요.
오후엔 좀 피곤하고, 지루하고, 졸렸다는 기억만 남아있네요. 순천과 보성 경찰분들이 교통 통제와 길 안내를 너무 완벽하게 해주셔서 신경쓸 것이 하나도 없이 페달만 밟았어요.
숙소가 산 중턱에 있는데, 답사를 오셨던 간사님들 얘기가 엇갈립니다. "어마어마한 언덕을 오르게 될 거다." vs "그냥 쬐끔 올라가면 나옵니다." 어느 말이 맞았을까요? 사람마다 오르막을 대하는 기준이 달라서 정답이 따로 있진 않지만, 언덕을 오르면서 둘 중 한 분이 입장을 바꿨습니다. "지난 번에 답사를 왔을 땐 이렇게 안 높았는데, 공사하면서 쬐끔 더 쌓았나보네요~^^;"
이제 국토순례도 이틀 밖에 안 남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 사이가 더 가까워집니다. 표민이가 가장 적극적으로 형들과 대화를 시도했어요. 상원이와 영준이가 볍씨학교에 대해 많이 묻고, 팔렬중학교를 소개해줬습니다. 한결이와 표민이가 가장 흥미를 느낀 부분은 학교 급식이었답니다. 오늘 저녁 식사가 꽤 맛있었는데, 팔렬중학교 급식은 항상 이것보다 더 맛있게 나온다는 거예요. 한결이는 그 얘기를 듣고 팔렬고등학교를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군요. 영준이와 상원이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학교를 홍보하며 진로상담을 해줬고요.^^
2~3일차까지만 해도 숙소에 들어가면 서로 데면데면하고 어색해서 할 말도 없으니 잠만 자기 바빴던 아이들인데, 이제 친해졌다고 잠도 안 자고 수다를 떨어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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