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코너를 돌아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달릴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탁 풀리면서 이제까지 꽤 긴장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전거로 615km를 모두 달렸습니다. 속도가 너무 빠르지는 않은지, 간격은 적당히 벌렸는지, 차가 어디서 튀어나오는지, 아이들이 졸지는 않는지.. 더 이상 맘 졸이지 않아도 됩니다.
광주에서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멀더군요. 평택에 들러서 평택 아이들과 자전거를 내려주고, 광명에 돌아온 건 8시가 다 되었을 때입니다. 스카이돔이 보이자 다시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 느낍니다. 버스와 트럭을 이용해서 무사히 광명에 돌아오면서 큰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어요.
완전히 무장해제가 된 건 간단하게 마침을 하고 모두 헤어진 다음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에 들어선 다음이었어요. 드디어 맛보는 맥주 한 캔. 꿀떡꿀떡 넘어가는 맥주와 함께 온 몸에 퍼지는 나른하고 아늑한 기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이지만 편하게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62km를 달려서 광주까지 들어가야 했지요. 오전에만 그만큼이면, 하루 종일 달렸을 때 120km를 달리는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 거죠. 속으로 만만치 않네? 라고 생각하며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자꾸 쉬어요. 1시간도 못 달려서 쉬고, 쉴 때마다 뭘 자꾸 먹여주네요. 이젠 쉬거나 먹는 것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 때쯤 되어서야 우리가 생각보다 빨리 달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요.
광주시내에 들어선 다음부터 더욱 힘들었습니다. 올해 국토순례 중 처음 느껴보는 두 가지를 광주에서 만났네요. 숨이 턱턱 막히는 도시의 열기와 무시무시한 교통량이었어요.
햇볕이 아무리 따갑다고 해도 시골에선 바람이 시원했는데, 도시는 정말 달랐습니다. 에어컨과 자동차 등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자전거를 내달려도 한증막에 들어앉은 기분이었어요. 와.. 덥다덥다 하는 건 다 도시 사람들 이야기구나.. 도시를 탈출해야 살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목포, 군산, 전주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항상 출발시간과 출근시간이 겹쳐서 복잡한 찻길을 뚫고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광주에 들어오니 이제까지 겪은 건 애들 장난일 뿐이었어요. 쉴 새 없이 자전거를 밀어붙이는 시내버스와 끝 차선에 주차된 차들을 피해서 대열을 유지하느라 로드가이드와 지원차량들이 애를 먹었답니다.
아침에 도훈샘 몸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표정이 계속 안 좋더니 감기랍니다. 열도 나고, 힘도 없어요. 에구구.. 도훈샘에게는 국토순례 내내 고마움과 미인한 마음이 왔다갔다 했어요. 젊은 기운으로 마지막까지 버텨낸 도훈샘, 수고했어요! 이렇게 매일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여유도 도훈샘이 아니었으면 가질 수 없었지요. 끝내고 돌아가는 얼굴에서 그나마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보여서 다행입니다. 나중에 밥 한 끼, 그리고 순례기간 내내 참았던 술 한 잔 꼭 합시다.
이제 전체 일정을 마무리해야죠. 첫 날 모이자마자 연습으로 달렸을 때가 생각납니다. 기어변속도 못하던 아이들이었어요. 구령도 안 따라하고, 힘들면 바로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려서기 일쑤였습니다. 느린 애들은 뒤에 놓고 그냥 쌩쌩 달리자고 보채던 녀석들도 많았고요. 왜 이렇게 천천히 가야 되냐며 짜증에, 못 타는 애들이 여긴 왜 왔냐고 투덜대고..
지금은요? 이제 웬만한 언덕에선 낙오 없이 올라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각 팀에서 뒤처지는 친구들을 앞세우고, 느린 친구들에 속도를 맞추는 등 서로를 배려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느리지만 다 함께 대열을 맞춰서 언덕을 올라서면 우리가 같이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화이팅을 외칩니다.
아이들의 성장이 너무 상투적인 표현으로 그려지나요? 그래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게 조금씩 변해간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지도자들은 해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휴가를 내고 오신 자원지도자 선생님들, 방학마다 참가하는 동아대 형들, 국토순례를 위해 연초부터 계획하고 평가회를 통해 더 나은 내년을 준비하는 사무국 등등.. 아이들이 뿜어내는 생명력에서 감동을 얻기 때문에 다들 그렇게 애를 써주시는 게 아닐까요?
광명 참가자들도 일주일 동안 많이 친해져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결이가 형들 메일 주소를 묻기도 하더군요.(볍씨친구들은 휴대전화가 없어서 연락하려면 메일을 쓰곤 하지요.) 광명 참가자 뿐만 아니라 같은 팀에 있던 안양 형들과도 어울리게 되었고, 다른 팀이지만 함께 숙소를 쓰면서 만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각자 다른 배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서로의 생활습관과 문화를 조율해나가는 모습에서는 평화를 보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경계하는 눈초리, 어쩔 수 없이 함께 움직이지만 아직은 서로가 낯설기 때문에 생기는 긴장, 그리고 조심스러운 몸짓과 한 마디 한 마디.. 그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며 친분을 쌓으니 "우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고, 공동체가 되어갑니다. 평화를 이루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여기까지 제가 페달을 굴리며 느낀 것들이라 아이들은, 또 여러 선생님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참가하는 모두가 각자의 배움을 얻어갔으리라 생각합니다. 생명의 어울림, 평화의 발구름이라는 멋진 구호가 그냥 말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는 걸 저는 3번째 참가한 올해에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깨닫습니다.
기타 등등
1. 부안에선 바지락죽을 먹고, 담양에선 창평국밥을 먹었습니다. 광양을 지날 땐 간식으로 매화빵을 후원해주셨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앞으로 국토순례를 계속 지역별로 돌아다닌다면 그 지역의 특산물을 더 많이 만나보고 싶어요. 예전 안동을 지날 때 안동 탈춤을 본 것처럼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도 해보고요. 올해도 경기전과 전동성당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경상도,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 모두 기대돼요~
2. 올해 자전거를 타면서 박재형씨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정말 대단하셨던 거네.. 참가하기로 결정하신 것부터 쉽지 않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고, 연습에 꾸준히 참여해주시고 국토순례를 단 한 번의 버스 탑승 없이 완주하셨잖아요?
올해 표민이가 완주를 하면 표상이와 박재형씨까지 3부자가 모두 국토순례를 완주합니다. 흔치 않은 기록이죠. 축하드리고요, 이 참에 엄마만 추가하면 온 가족이 국토순례를 완주하는 기록을 세우시는 건데 한 번 도전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또는 삼부자가 한 번에 도전해서 완주하는 것도 새로운 기록으로 남을 수 있답니다.ㅎㅎㅎ
그러고보니 제원이네도 삼부자(또는 온가족) 완주에 도전해보시면 어떤가요?? 내년에 제원, 제윤이가 함께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되네요~~^^
3. 국토순례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자전거 타는 게 제일 쉬운 것 같아요. 때에 맞춰 먹을 것과 마실 것 챙겨주는 보급팀, 잠자리와 일정을 확인하는 총무팀, 낮이고 밤이고 건강 보살피는 의료팀과 버스팀, 대열을 계속 따라다니며 고장난 자전거를 고쳐주는 정비팀, 낮에는 사진찍고 밤에는 편집하는 홍보팀, 주행 중에 응원하고 밤에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프로그램팀, 그리고 사무국에서는 모든 일정이 무리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조율을 해주지요. 게다가 이 모두가 낮에는 자전거 대열 앞뒤로 차량통제까지 지원해주니 그야말로 밤낮이 따로 없습니다. 자전거 타는 게 제일 쉽다는 말이 맞는 것 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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